“내가 머무는 곳이 어디든,
편지는 그곳으로 엄마를 데려왔다.”
시인이자 소설가로서 미국의 문학상을 휩쓸고 있는 신예작가 고은지의 첫 책
태평양을 건너 1만 킬로미터를 날아온,
어린 날 나의 전부였던 엄마의 편지들을 꺼내들며
“안녕 안녕 안녕 우리 은지.” 『마법 같은 언어』는 엄마가 보낸 편지 속의 다정한 인사로 시작된다. 편지의 내용은 너무나 일상적이고 신변잡기적이라서 독자는 이 편지를 주고받은 모녀 사이에 1만 킬로미터의 거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짐작하기 어렵다. 바로 다음 페이지를 넘기면 이번에는 엄마가 아닌, 저자가 쓴 에세이가 시작된다. “현재는 과거의 복수다. 한국엔 전생에 자신이 가장 마음을 아프게 했던 사람의 부모로 다시 태어난다는 믿음이 있다. 나는 1988년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의 오코너병원에서 태어남으로써 복수에 성공했다.” 이제 독자는 이 책이 평범하고 관습적인 서사로부터 멀리 벗어나 있다는 것을 일찍부터 의식하게 된다.
고은지는 이민 2세로 미국에서 태어났다. 그가 엄마의 몸을 도려내며 태어나 복수에 성공한 뒤 15년이 흘렀을 때 부모님은 자식을 두고 한국으로 돌아간다. 그리하여 부모의 돌봄 대신 자살 충동과 섭식 장애와 더불어 외로운 청소년기를 보내야 했는데, 이때 잠시나마 그를 위로해준 것이 일주일에 한 번씩 엄마에게서 온 편지였다. 부재와 방치로서 자신에게 가장 큰 상처를 안긴 엄마였지만 그럼에도 그 상처를 달래준 것이 엄마의 손길이었던 셈이다.
저자가 인터뷰에서 밝히길, 『마법 같은 언어』의 초안은 원래 엄마가 보내왔던 49통의 한글 편지를 딸인 자신이 영어로 번역한 글뿐이었고 그 외에는 두 페이지 정도의 옮긴이의 말 정도였다고 한다. 어느 순간 정식 출판물에는 49통 중에서 10통의 편지만이 실리게 되었고, 2쪽의 후기는 200쪽의 산문이 되었다. 그렇게 이 책은 독특하게도 엄마가 보낸 한글 편지, 그리고 저자 본인의 개인사 또는 가족의 역사를 담은 에세이가 10차례 번갈아 나오는 식으로 구성되었다. 미국판에는 한글 편지를 저자가 직접 번역한 영문이 포함되었으나 한국어판에서는 제외하고 편지의 이미지만을 남겼다. 손으로 쓰인 엄마의 편지와 활자로 된 산문을 번갈아 읽다보면 독자는 어느새, 이 둘이 아름다운 공생 관계를 이루도록 교묘하게 얽혀 있음을 눈치채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