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죽음 앞에서 저마다 자신의 언어를 갖는다
작가는 시어머니의 고통을 이해하게 되면서 존엄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조력사 결정을 마침내 존중한다. 그럼에도 사랑하는 이와 이별해야 하는 슬픔과 두려움은 무척 컸다. 뿐만 아니라 작가가 거주하는 프랑스 역시 한국과 마찬가지로 안락사(의사의 손을 빌려 죽음에 이르는 것)나 조력사(의사의 도움을 받지만 스스로 마지막 버튼을 누르는 것)가 모두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죽음을 승인 받는 일’과 ‘국경을 넘는 일’을 함께 준비하며 자신이 죽음에 조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죄책감도 고스란히 느낀다.
“정말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을까?”
“이건 삶이 아니야. 너도 알잖니.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직 정신이 또렷할 때 이 고통을 끝내는 일이야.”
낯설고 끝을 알 수 없는 기다림의 시간인 세 달 동안, 시어머니는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자신의 삶을 무척 사랑하고, 무임승차를 하거나 빨간불 한번 무시한 적 없던 그녀가 법을 어기는 일조차 감수하며 국경을 넘어 자기 자신으로 남기 위해 떠나는 여행을 결심한 것을 보며, 작가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결국 자신이 살아온 삶의 태도와 닮아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고요한 결심》은 조력사나 안락사에 대한 찬반을 묻는 책이 아니다. ‘어떤 선택이 옳은가가 아니라, 존엄을 지키며 끝까지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는가’를 묻고 있다. 철학자가 아니어도, 우리는 자기 삶의 언어로 죽음을 준비할 수 있다.
어떻게 나이 들고, 어떻게 죽을 것인가!
“살아있는 내내, 우린 ‘과거’ 혹은 ‘젊음’을 기준으로 비교한다. (…) 육체적 문제들이 얼마든지 수정 가능하다는 전지적 환상이 깨지는 순간, 우리는 늙음을 이해하게 된다. 만약 ‘미래’, 그리고 ‘늙음’을 기준으로 산다면, 매일 조금씩 쇠락하는 느낌을 더 잘 견딜 수 있을까.” _ 본문에서
앞서 말한 것처럼 살아온 대로 죽는 것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나이 들어야 할까. 작가는 노년을 맞이하는 다양한 삶의 태도를 지켜보며, ‘늙음도 저마다 다른 문을 가진다’고 말한다. 삶에 부드럽게 조응하는 문, 들어가기 위해 비밀번호가 필요한 문, 단단히 잠긴 문. 어떻게 하면 젊음을 유지할 수 있을지, 더 건강하게 살려면 무엇을 해야 할지 골몰하지만, 우리는 나이 드는 삶, 이른바 노년에는 관심이 없다. 때문에 똑같은 삶이 없듯, 똑같은 늙음도 없다는 것을 자주 잊는다. 그러나 누구나 노년에 ‘존엄’과 ‘자유’를 어디까지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질문 앞에 서게 된다. 고독사를 걱정하지만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건, 늙음이 닥치기 전에 타인에게 어떻게 의존할 것인지를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다. 결국 이 질문은 ‘지금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가’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출판사 서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