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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장미의 창백 : 신미나 시집 / 신미나 지음

문학 백장미의 창백 : 신미나 시집 / 신미나 지음 표지
백장미의 창백 : 신미나 시집 / 신미나 지음 상세정보
발행사항 파주 : 문학동네, 2024
형태사항 128 p. ; 23 cm
총서사항 문학동네시인선 ; 221
표준부호 ISBN: 9791141601324 03810: \12000듀이십진분류법:
분류기호 한국십진분류법: 811.7, 895.715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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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장미의 창백 : 신미나 시집 / 신미나 지음 QR코드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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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가 맹렬히 붉기를 거부할 때 모든 색에서 멀어져 다만 흰빛으로만 희미해질 때” 인생이라는 신앙, 그 기이하고도 불가해한 아름다움을 믿는 시 구상문학상 수상 시인 신미나 신작 시집 시를 쓸 때는 신미나, 그림 그릴 때는 싱고. 경쾌하고 진중하게, 발랄하고 사려 깊게 독자들과 만나온 신미나 시인의 세번째 시집 『백장미의 창백』을 문학동네시인선 221번으로 펴낸다. 200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시인은 첫 시집 『싱고,라고 불렀다』(창비, 2014)에서 전통적인 서정시의 토대 위에 쌓아올린 애잔하고 웅숭깊은 언어의 진수를 선보였으며, 구상문학상을 수상한 두번째 시집 『당신은 나의 높이를 가지세요』(창비, 2021)를 통해 소외되고 밀려난 존재들을 호명하며 그들의 고통을 함께 짊어지고 다독였다. 이후 3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현실과 현실 너머를 엄하게 거두어 더 깊은 곳으로 길을 내길 바”란다는 구상문학상 심사평에 부응하듯,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태어난 언어를 그러모아 인생이라는 신앙을 살뜰히 빚어낸다. 실패한 비유에 지나지 않는 시의 역할에 낙심하면서도 낭떠러지에 발을 내디디는 심정으로 다음 문장을 써내려간다. 지난 시집 출간 이후 3년간 생애 가장 밀도 높은 시간을 보냈다고 밝힌 시인이 죽음에 대해, 그리하여 삶에 대해 치열하게 묻고 답해온 흔적이 이 한 권의 시집에 오롯이 담겨 있다. 시인이 고이 접어둔 이야기를 펼치면 “미래, 미래, 미래로 물결쳐오는 문장들”(「바람 주머니가 부풀 때」)이 밀려들 것이다. 절정이 지나간 백장미는 오래전 옛날을 지나온 얼굴이고 당신은 한 톨의 소금도 집어먹지 않고 싱겁게 웃었습니다 투석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무서운 꽃밭에서 풀어졌습니다 장미가 맹렬히 붉기를 거부할 때 모든 색에서 멀어져 다만 흰빛으로만 희미해질 때 속눈썹이 붉은 아이가 검은 입을 크게 벌리며 오고 있습니다 양팔을 벌리며 당신을 데리러 오고 있습니다 _「백장미의 창백」 전문 이번 시집의 서시이자 표제작인 「백장미의 창백」에서 “절정을 지”난 백장미는 “모든 색에서 멀어져/ 다만 흰빛으로만 희미해”진다. 빨간 장미가 흔히 매혹적인 열정을 상징한다면, 모든 색을 흡수하는 흰빛을 지나 투명하고 창백해진 장미는 어둠을 찢고 나오려는 기미를 내비친다. 두번째 수록작 「검은 바위 물밑에서」에는 “밤의 고요 속에/ 조용히 미쳐가는 눈보라/ 어둠 한가운데” 한 소년이 있다. 소년은 이윽고 “도끼를 쥐고” “유리창을 깨뜨”린 채 “아찔하게 빛나는 유리를 밟고 서 있”다. 「선생님 전 상서」에는 선생에게 안녕을 고하고 떠나는 화자가 등장한다. “흔하고 고운 것 보시고 안녕히 계세요, 선생님”이라는 작별의 말로 미뤄볼 때, 그가 앞으로 질서정연하고 아름답기보다 생생하고 참혹한 삶의 현장을 마주하게 되리란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이들을 “나의 형제”(「검은 바위 물밑에서」)라 칭하는 시인은 평온한 어둠을 깨뜨리고, 과거의 가르침에 결별을 선언하며 ‘순수한 창백의 시대’를 맞이하고자 한다. 이 시집의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장은영은 1부의 제목 ‘순수한 창백의 시대’가 “죽음에 대한 감각이 퇴화한 시대, 다시 말해 죽음의 불가해성이 삶의 영역에서 박탈된 시대를 명명한다”고 말하며, “누구에게나 필연적이고 피할 수 없는 죽음의 보편성이 망각된다면 삶의 유한성도 쉽게 잊히기 마련”이라고 역설한다. 죽음에 대한 감각을 일깨우는 신미나의 시는 죽음이 삶에 요청하는 바에 귀 기울이겠다는 의지이다. 붙잡아! 흩어지는 단어를 도망쳐! 정돈되려는 말로부터 단어를 쥐고, 한 번에 올라타 죽음을 경험했니? 몸속의 실핏줄 하나가 기타의 현처럼 징, 울리는 것을 나는 통과했어 정확히 느꼈지 의미를 버리고 감각을 믿는다면 (...) 언어로는 부족했어요 한달음에 달려가기까지는 눈물은 그만합시다 실패한 비유를 비웃으며 송전탑과 전선을 원숭이처럼 타넘는 해골의 웃음소리 _「어느 날, 죽음이」 부분 17년의 시력을 거치며 오랜 시간 언어의 영토에 머물러온 시인은 가장 먼저 자신의 언어에 죽음을 선고한다. 깊은 어둠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해골”은 ‘나’의 귓가에 “아끼는 걸 잘도 숨겨두는구나/ 오늘밤, 네가 가장 사랑하는 걸 가져갈” 것이라고 속삭인다. 시인에게 그것은 필시 평생 부려온 언어인바, 그는 “정돈되려는 말로부터” “도망”치고, “흩어지는 단어를” “붙잡”으며 자신을 “통과”하는 “죽음을 경험”한다. 그렇게 신미나는 “언어의 안팎을 뒤집어 다시”(「비유로서의 광수 아버지」) 쓰는 행위를 통해 감각의 주체로 거듭난다. 「탕후루를 탕후루라고 말할 때」에서 ‘샤즈샤시’라는 조어를 통해 어금니에 찐득하게 달라붙은 설탕을 씹는 모양을 표현한다. 「댐 옆의 붉은 다리를 건너자」에서는 ‘之乙之乙’이라는 한자를 통해 뱀이 하늘을 기어가는 모양을 표현한다. 언어의 의미보다는 어감이 주는 재미나 시각적 효과에 방점을 둔 것이다. 인류의 문명을 상징하는 언어를 해체하는 시도는 인간의 언어 바깥에 놓인 낯선 종(種)의 출현으로 자연스레 귀결한다. 신미나는 그의 첫 시집 『싱고,라고 불렀다』에서 이미 ‘싱고’라는 조어를 탄생시킨 바 있다. 수록작 「싱고」에 따르면, ‘싱고’는 시인이 스스로를 칭하는 또다른 이름인 동시에 자신이 아닌 모든 것을 뜻하는 말이다. 때로는 어떤 기분을 뜻하고, 때로는 “뿔 달린 고양이”나 “수염 난 뱀”이 되며, “몇번이고 죽었다 살아”나는 낯선 존재들은 이번 시집에 한층 다채로운 모습으로 등장한다. 당신 누구세요 나는 모르는 사람인데 (...) 그래요, 아가 이 소라로 무슨 노래를 들려줄까요? 등에 산호가 돋고 앵무새의 부리처럼 코가 구부러지고 잇몸에서 암모나이트가 돋는 낯선 종(種)의 노래를? _「뿔」 부분 “네발로 기며 침을 흘”리는 태초의 모습으로 돌아간 ‘엄마’에게 화자는 “낯선 종(種)의 노래를” 들려주고자 한다. 생명의 빛이 꺼져가는 ‘엄마’의 모습을 “난생처음/ 뿔소라를 보고” 신기해하는 ‘아기’이자 “변이”된 존재로 바라보는 화자의 시선은 엄마에게 낯선 종으로서 새로운 탄생을 부여하는 것 같다. 또다른 시 「풀」에서는 토끼처럼 귀가 크고, 코끼리처럼 코가 긴 존재 “코끼”를 떠올린다. “토끼는 귀가 크고/ 코끼리는 코가 길다고/ 말하려다/ 코끼!라고” 잘못 내뱉은 화자가 뒤이어 “지구 바깥에” “진짜 코끼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상상하는 장면은 우리가 당연하게 사용해온 언어를 의심하고 다르게 사용하는 일이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리란 기대를 품게 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번 시집에 웃는 존재들이 자주 등장한다는 것이다. 시에 등장하는 낯선 존재들은 “싱겁게 웃”(「백장미의 창백」)고, “뾰족하게 웃”(「바람 주머니가 부풀 때」)고, “하늘 보며 웃”(「귀로(歸路)」)고, “눈물나게 웃”(「커튼콜」)는다. “걀걀걀 웃”(「화부산(花浮山), 아기자기 오컬트」)고, “희희희 웃”(「꼭두전」)고, 그야말로 “당나귀처럼 이상하게 웃”(「나의 음산하고 야성적인」)는다. 이 웃음들은 시의 맥락에 따라 자조와 풍자, 또는 해학과 유머를 두루 품고 있지만, 결국에는 “세상은 신비롭고 귀엽고 웃긴 비유”(「혁수는 기담이라 말하고 문채는 서정이라 말한다」)라는 시인의 다감한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듯하다. 4부에 수록된 장시 「꼭두전」은 이 시집에 수록된 마흔 다섯 편의 시에 등장하는 산목숨과 죽은목숨, 인간과 동물, 우리가 아는 세계 너머 낯설고 기이한 존재 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축제의 장을 마련한다. 언어를 빼앗으러 왔던 죽음 이후의 존재들에게 이번에는 인간의 언어로 푸짐한 잔칫상을 차려 대접한다. 총 6악장으로 구성된 시의 후반부에 이르면 신의 의심과 인간의 믿음, 그 경계가 허물어지며 그 언어조차 무용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홀린 듯이 죽음에 몰입했던 시간은 이 지난한 삶의 끝에 구원이 있을지에 대한 물음이었을까. 시인은 언젠가 그 답을 구하기를 바라며 그저 눈앞에 “딱 한 걸음만큼”의 낭떠러지가 솟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걸음을 내디디고 있다. 눈을 떠도 눈을 감은 것 같았습니다 사람들은 한 발씩 딛는다는 감각을 믿어야 했습니다 발을 디딜 때마다 딱 한 걸음만큼 솟는 낭떠러지 누군가는 그것을 희망이라 불렀습니다 _「폭우 속으로」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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