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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일베들의 시대 : '혐오의 자유'는 어디서 시작되는가 표지
제 목 보통 일베들의 시대 : '혐오의 자유'는 어디서 시작되는가
저 자 글 김학준
발행처 오월의봄
발행년도 2022
청구기호 334.2-김92보
추천시기 2022,08
조회수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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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2010년대 중반, ‘표현의 자유’를 내세운 혐오의 유희로 온라인을 물들인 일간베스트저장소는 사이버 공론장에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가져왔다. ‘드립’이란 말로 유머를 가장한 채 온라인에 퍼져나간 혐오의 메시지들은 일베가 생긴 지 10여 년이 흐른 지금 현실 정치인들의 목소리로 발화되는 지경에 이르렀고, ‘이대남’에 대한 문제적 호명과 함께 한국 사회의 ‘일베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도대체 왜, ‘일베화’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 영향력이 커져만 가는가? 정치와 사회 곳곳에서 감지되는 ‘일베의 그림자’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일베로 드러난 한국 사회의 민낯은 무엇을 말하는가? 일베는 정말 ‘낡은’ 이야기인가? 2014년 일베가 몰고 온 사회적 충격이 가장 크던 시점에 일베를 연구한 논문으로 화제를 모았던 저자가 그로부터 8년 이후, 혐오 선동의 정치가 부상한 이곳에서 다시 일베를 이야기한다.

  책속에서

P. 8

  • 하지만 일베는 달랐다. 이들은 딴지일보를 위시한 정치적 패러디를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스스로 젊음을 ‘인증’하며 자신들이야말로 깨어 있는 일등시민이라는 확신을 사방에 퍼뜨리고 다녔다. 보수 또는 극우적인 생각을 가진 이들이 실존한다는 놀라움, 실존하는 보수주의자들이 심지어 젊다는 반전, 그들의 행동이 자발적이라는 데서 오는 당혹, 특히 범진보 진영의 입장에서 행해지던 비판과 풍자의 칼날이 정확히 반대 방향을 향한다는 충격, 정의와 공정 같은 민주적 가치로 민주주의를 공격하는 데 대한 분노에 이르기까지, 일베는 그 등장과 함께 한국 공론장에 거대한 혼돈을 불러온 진앙지가 되었다.  

P. 16

  • 논문이 발표된 2014년에서 지금 이 글을 쓰는 2020년대에 이르기까지 일베는 상당한 부침을 겪었다. 일베 데이터를 분석하는 2장에서 깊게 논의하게 되겠지만, 한국 사이버공간은 메갈리아와 TERF(트랜스젠더 배제적인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대두와 함께 거대한 균열을 맞이했다. 한때 불구대천의 원수와도 같던 일베와 루리웹, 인벤 등의 커뮤니티는 ‘반페미’의 깃발 아래 ‘국공합작’을 하여 언론이나 정당, 기업 등에 맹폭을 진행했다. 하지만 모두가 익히 알고 있듯이 일베의 ‘전성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P. 17~18

  • 그러나 이러한 상황을 일베의 영향력이 사라진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아니, 일베의 영향력은 오히려 확대되었다. …… 급기야 0선 중진이라는 ‘진기록’을 쓴 이준석이 보수정당의 당대표가 되더니, ‘여성가족부 폐지’를 위시한 현란한 성별 편 가르기와 혐오 선동으로 정치적 재배열(realignment)을 시도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학위논문을 작성한 지 수년이 지났음에도 그 글에 생명력이 남아 있다면 바로 이런 지점들 때문이다.  

P. 21 

  • 이 책에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일베적 혐오의 구조 또는 기원을 이해하고 현재 강고해 보이는 혐오 선동을 파훼하는 여러 불쏘시개 중 하나로서의 가치일 것이다.

P. 27

  • 일베란 무엇인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누군가는 한국형 극우주의의 발흥이라 보았고, 누군가는 일본의 재특회(재일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 모임)나 일본의 유명 극우 온라인 커뮤니티 니찬네루(www.2ch.net)와 같은 인종주의적 공간이라고도 했으며, 여성혐오를 기반으로 모인 호모소셜(homo social)의 공간이라 말한 이도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지적들이 성립하기 전에 언급되어야 하는 것은 일베의 존재 형식, 즉 ‘한국 온라인 커뮤니티’로서의 문화적ㆍ역사적 맥락이다. 앞으로 지겹도록 확인하겠지만, 일베는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괴물이 아니다.  

P. 69

  • 웃길 수 있는 능력이라는 ‘단 하나의 잣대’로 구성된 경쟁체제에서 윤리적ㆍ도덕적 잣대는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더 많은 사람의 주목을 끌고 더 많은 반응을 이끌어내야 하는 웃음 시장에서 ‘공정한 경쟁’ 이외의 가치는 우스운 것이 된다. 더 많은 주목을 이끌어내는 방법이 ‘어그로’라 할 때, 이를 비난하거나 과도한 주목경쟁을 개탄하는 사람들은 ‘씹선비’가 되는 것이다.  

.P. 85~86

  • 이제 본격적으로, 일베의 ‘담론 구조’를 살펴볼 차례다. 이를 위해 이 장에서는 ‘빅데이터 분석’의 일종인 텍스트 분석을 진행할 것이다. 이 분석에는 최초의 일베 게시물이 생성된 2011년 5월 28일부터 2020년 12월 31일까지 총 81만 1,327건의 일베 게시물 전수가 수집ㆍ사용되었다.

P. 132

  • 두 번째로 높은 비율을 차지한 토픽은 결혼 토픽이었다. 총 8,239건의 게시물이 해당된 이 토픽은 단순히 ‘결혼하고 싶다’ 따위의 의사 표명이나 ‘결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와 같은 고민 상담이 아니다. 이후 3장의 게시물 사례 분석에서 확인하게 되겠지만, 적지 않은 이용자들, 특히 기혼자들은 ‘김치녀’와의 결혼을 극구 말리거나 결혼을 하더라도 ‘사흘에 한 번은 패야 한다’는 식의 발언을 쏟아낸다. ‘시녀’와 같은 키워드는 결혼해봤자 아내의 시녀가 될 뿐이라는 일베 이용자들의 자조와 관련이 있다. 이러한 주장들은 2021년 하반기 온라인에서 떠돈 ‘퐁퐁남’ 또는 ‘설거지론’을 예비한다.  

P. 149

  • 이들은 북한이라는 외부의 적을 겨냥한다면서도 실상은 내부의 적인 ‘종북’에 더 많은 냉소와 분노를 표출한다. 내부의 적을 향한 증오는 호남에 대한 멸시와 결합되어 5·18 수정주의로 발전한다. 5·18에 대해 북한군, 다시 말해 외부의 개입이 있었다고 주장하면서도 ‘반골 기질’을 가진 ‘홍어’들의 ‘폭동’이라고 깎아내리는 양면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족주의적 포섭의 대상으로서 여성을 향한 맹비난을 쏟아낸다. 요컨대 일베적 혐오는 한국 사회를 ‘분열’시키는 존재로서 내부의 타자들을 향한다.  

P. 29

  • 온라인 유머 공동체가 일종의 호모소셜을 이룬다 할 때, 웃음의 배후에 흐르는 젠더권력의 현존을 지적한 ‘넷페미‘들의 강력한 문제 제기는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웃음의 컨센서스 consensus에 적지 않은 타격을 가했다. 농담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질문하는 사람들이 생긴 것이다. 이들은 흔히 ‘프로 불편러‘라 일컬어졌고... 

P. 351

  • 일베에서 자주 이야기되듯이 각종 어그로성 드립의 핵심은 성스러운 것에 대한 도전 자체가 아니라 성스러운 것을 비꼬았을 때 돌아오는 ‘씹선비’들의 반응이 ‘우습다‘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 반응이 격렬하면 격렬할수록 그것으로 일베의 의례는 성공한것이 된다.

P. 352

  • 이들은 루저이되 ‘감성팔이‘에 속아 쉽게 선동되는 ‘씹선비‘와는 대비되는, ‘합리적‘인 ‘루저‘로 자신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한계를 명확히 알고 있는 이들이 ‘씹선비‘를 비난하는 가장 치명적인 무기는 냉소인 바, 이들은 ‘선비‘들이 믿고 있는 성스러운 바로 그것을 냉소함으로써 성스러움의 기반부터 무너뜨리고자 한다. 

P. 352

  • 파편화된 사회에서 믿을 것은 오로지 ‘나‘의 능력과 노력뿐이다. 사회적 편견이 있다면 그것은 개인이 극복해야 할 일이기도 하거니와, 능력만 있다면 어떤 난관도 헤쳐나갈 수 있다. 그런데 스스로를 소수자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사회에 책임을 돌리며 고통을 인정하고 배상할 것을 요구한다. 민주화는 이들의 무책임하고 비합리적인 요구에 굴복하여 애꿎은 자신들의 희생을 강요하며 기회의 평등이라는 원리….  

P. 355

  • 일베 이용자들이......대통령과 군인, 잠수부의 입장에 자신을 이입하는 것은 그들의 공감이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 있다기보다 패자와 승자 사이에 있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이들의 공감 대상은 ‘가해자‘보다는 ‘승자‘라는 것인데, 이러한 태도는 5·18 수정주의에서 북한 특수부대 침투론이 상기시키는 것처럼 민중은 스스로 생각해 판단을 내릴 능력이 없다는 전제에서 기인한다. 이는 촛불집회가 좌파의 ‘선동‘으로 촉발된 것이라는 이해와도 맥을 같이하며, 일베 이용자들이 능력주의의 신봉과 패자(피해자, 소수자, 약자) 혐오 그리고 지배자 갈망을 내면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비록 그들 스스로가 자신의 인생을 밑바닥 인생이라 자조할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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