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동안 쓰여진 글을 모은 2010년 산문집.
사람과 자연을 한없이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봄으로써 건져 올린 기쁨과 경탄, 감사와 애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또한, 죽음과 가까워진 생에 대한 노작가만의 성찰도 담겨 있다.
책 한 권 한 권마다 깊은 삶의 자국들을 새겨놓은 글이어서 '박완서가 읽은 책'만의 재미와 깊이를 한껏 느낄 수 있는 글들이다.
"청탁에 밀려 막 쓴 글이 아니고 그동안 공들여 쓴 것들이어서 흐뭇하고 애착이 간다."고 말한다.
====책속에서====
26p 못 가본 길에 대한 새삼스러운 미련은 노망인가, 집념인가.
올해가 또 경인년이기 때문인가, 5월이란 계절 탓인가, 6월이 또 오고 있기 때문인가.
나는 누구인가? 잠 안 오는 밤, 문득 나를 남처럼 바라보며 물은 적이 있다.
스무 살에 성장을 멈춘 영혼이다. 80을 코앞에 둔 늙은이이다.
그 두 개의 나를 합치니 스무살에 성장을 멈춘 푸른 영혼이, 80년 된 고옥에 들어앉아 조용히 붕괴의 날만 기다리는 형국이 된다. 다만 그 붕괴가 조용하고 완벽하기만을 빌 뿐이다.
71p 남대문 입납. 입납이란 편지를 드린다는 뜻이다. 그 시절엔 편지 겉봉에 흔히 쓰던 문자였다.
그러니까 남대문 입납은 주소를 정확하게 쓰지 않고 남대문이라고만 쓴 편지를 가리키는 말로 주소도 모르고 사람을 찾아 나서는 사람을 조롱하거나 핀잔 줄 때 쓰는 말이었다.
93p 삶이란 존엄한 건지, 치사한 건지 이 나이에도 잘 모르겠다.
일본의 친절이 우월감의 소산이라면 우리의 불친절은 열등감의 소산일지도 모른다.